일과 삶의 균형

오늘날 사람들과 일의 관계는 참 우습게 되었습니다. 직장이란 곳은 들어가자마자 나갈 길을 찾고, 나가는 즉시 들어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 그게 유원지의 놀이기구 얘기라면 괜찮지만, 우리 삶의 핵심적 요소인 일이 그런 것이 되었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우스운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마치 우리 일이 아닌 듯이, 외계인이 와서 지구인의 삶을 관찰하듯 이 우스운 광경을 잠시 살펴봅시다.

너무 바빠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사람 vs. 일이 없는 사람

오늘날은 스피드 시대, 무한 경쟁의 시대, 정신없이 발달하는 기술의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너무 많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동분서주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읽고, 쓰고, 사람 만나고, 회의하고, 컴퓨터 앞에서 끝없이 앉아 일을 처리해도 일이 끝이 나지를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칩니다. ‘내가 이렇게 죽도록 일만 하려고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회의감마저 들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시간도 낭비와 게으름으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또다시 밀려오는 일의 흐름에 맞서 부지런히 노동을 계속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피로감을 토로하고 고용자와 사회에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그런 목소리와 표현에 대해 굉장히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부른 소리’라구요. 우리는 그런 것도 없어서 실업자라고 불리는데, 무슨 일이든지 주기만 하면 뼈가 으스러지도록 할텐데, 그러고 싶어도 일이 없어서 못하는 상황인데, 너네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서 더 편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이죠. 노조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그들을 마구 욕하면서 반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고용주와 부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 실업자들입니다. 그들이 고용주와 부자들보다 더 극렬하게 노조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세대 vs. 나이 든 세대

젊은 세대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립니다. 벌어서 채워 넣어야 할 구멍이 어디 한둘인가요? 그래서 일이 하기 싫다는 생각은 사치로 여기고 몸에 이상이 와도, 마음에 이상이 와도, 자존심이 상해도, 인격이 모욕을 당해도, 꿈이 아득히 멀어져 가도, 내 신념에 위배가 되어도, 그저 들판에서 쟁기질하는 소처럼 묵묵히, 혹은 전쟁터에 나간 투사처럼 맹렬하거나 처절하게 일을 합니다. 그들에게 남은 꿈은 딱 한 가지입니다. 은퇴하는 것. 은퇴해서 벌어 놓은 돈으로 한가하게 지내는 것. 여행도 하고 골프도 치고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면서 비로소 느릿느릿하게 사는 것. 매일 직장에 나가 만나기 싫은 사람 만나지 않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서 사는 것. 누구에게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 동안 베풀지 못했던 사랑을 베풀고 배려하며 사는 것. 그것이 일을 하는 젊은 세대의 꿈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루 빨리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에 반해 막상 은퇴한 분들의 삶은 어떨까요?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네 시간 내지 다섯 시간 골프를 치며 사시는 분들은 정말 행복할까요? (뭐 그렇게 골프 치는 것이 한국에서는 엄청난 부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그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닙니다. 워낙 싸니까.) 사실은 그분들은 막상 일을 하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합니다. 자기도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수입이 적어도 괜찮으니 뭔가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일을 찾은 분들은 행복해 하고, 그런 일을 못 찾으면 자원봉사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젊었을 때 하던 ‘일’로 자원봉사를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지식으로 봉사하는 것이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한때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어 했던 일을 돈 안 받고라도 계속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일에 대한 우리의 이런 모순된 태도 이면에는 일에 대한 우리 모두의, 우리 사회의, 우리 시대의 잘못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혹은 외계인이 우리들의 삶에 찾아온다면, 이 질문을 꼭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패시브 인컴 열풍

2009년에 Timothy Ferris라는 사람이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에 대한 책을 내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패시브 인컴 개념이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만, 북미에서는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패시브 인컴이란, 내가 적극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얻는 액티브 인컴에 대비하여, 시간이나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벌어들이는 소득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이자 소득입니다. 금융기관에 돈을 넣어 두면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발생하는 소득이니까 패시브 인컴인 거죠. 하지만 패시브 인컴이 단순히 이자나 주식 배당 소득 같은 것만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소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이고, 이런 개념 없이도 이미 잘 살고 있으니까요. 이 개념이 선풍적 인기를 끈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 두면, 내가 거의 손을 대지 않아도 웹사이트가 혼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내게 돈을 벌어준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페리스의 책에 나오는 얘기는 아닌데 패시브 인컴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 하나를 해 드리겠습니다. 옛날 이탈리아 어느 마을에 우물이 없어서 누군가 먼 시냇가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고 합니다. 서로 사촌인 두 젊은이가 이 일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시냇가에서 마을까지 파이프 라인을 깔아보면 어떨까?’ 그 청년은 함께 물 긷는 일을 하는 자기 사촌에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지금도 수입이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렇게 힘든 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요. 그래서 그 청년은 하는 수 없이 혼자서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물 긷는 일이 끝난 뒤에  파이프를 연결하는 일을 한 것이지요. 마침내 몇 년이 걸려 파이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이 청년은 매일 물을 길으러 가지 않고 앉아서 물을 팔 수 있었습니다. 어떠세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시나요? 도전 의식이 마구 샘솟으시나요? 제가 이야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지, 사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가 전해 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패시브 인컴 개념은 들불처럼 퍼져 나가서 인터넷을 뒤덮었습니다. 다들 “오늘날 어떻게 하면 이런 비즈니스를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만들어서 일하지 않고도 돈이 저절로 벌리는 파이프라인을 얻으려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한국은 물론이고 북미에서도 오해를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개념 자체는 아주 좋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덤비면 곤란하죠. 패시브 인컴의 전도사들이 예로 드는 비즈니스의 예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 부동산 임대료
  • 발명, 상표 등의 특허
  • 책, 노래, 기타 출판물의 로열티
  • 블로그나 웹사이트의 광고 수입
  • 여러 금융상품의 배당 이익
  • 채권이나 예금의 이자
  • 연금
  • 프랜차이즈 수입

위의 예에서 이미 상당한 돈을 번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부동산 렌트, 배당, 이자, 연금, 프랜차이즈 수입 등)을 제외하면 그다지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남는 것은 학자나 예술가나 저술가들의 로열티와 인세, 그리고 블로그나 웹사이트의 수입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절대로 마냥 ‘패시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터넷에 블로그 하나 만들어 두면 엄청난 광고 수입이 생겨서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꿈을 깨야 합니다. 자기 분야에 대단한 전문성이 없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또 시작한다면 보통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의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인터넷 시대, 지식 산업 시대의 새로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아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성공은 얄팍한 꾀 덕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문성이라는 바탕 위에 쏟아부은 피와 땀의 결실입니다.

이 말은 패시브 인컴이란 개념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패시브 인컴이 요행, 꼼수, 하룻밤에 기적처럼 일구어내는 공식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광을 찾아다니듯 남들이 모르는 기발한 비즈니스 아이템을 찾아내고 그 후에는 뒷짐 지고 편하게 살겠다, 아니면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고 살겠다는 목표로 이것저것 뒤적이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인터넷이 대단한 장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성과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고, 전문성 없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 하나로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돈을 벌겠다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사업이 있다면 일주일 뒤에 약 1,000개의 경쟁업체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일과 삶의 균형?

세 번째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일과 삶의 균형입니다. 얼마 전에 네이버에서 일과 삶의 균형 캠페인을 벌이더군요. 좋은 일입니다. 이런 캠페인이 나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꿈도 건강도 가족도 이웃도 돌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일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일 겁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면서 일을 더 많이 늘여야 한다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일까요?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 대표적인 조치겠죠? 옛날에 복사기 광고를 본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광고의 카피는 ‘아빠를 집으로!’였습니다. 복사기 속도가 빨라지면 아빠가 좀 더 빨리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인데, 논리의 비약이 좀 심하더군요. 그런데도 그런 광고가 나온 것은 근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아빠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 때문이겠죠.

표면적으로 보면 ‘일과 삶의 균형’은 흠잡을 데 없는 개념입니다. 균형은 좋은 것이니까요.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은 것이니까요. 일을 너무 많이 하면 피해의식이 생기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니까요. 그리고 일을 너무 적게 하면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니까요. 승진이나 발전도 기약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일을 딱 적당한 정도까지만 하자는 것, 가정과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것,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자는 것이겠지요. 일을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과 삶의 균형을 달성했다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 했습니다.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우선 사람들이 그런 균형을 추구할 형편이 되는지가 문제입니다. 백 번을 양보해서 그런 형편이 된다 해도, 그 균형점이 도대체 어디인지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 백 번을 양보해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균형점을 발견했다고 해도(예를 들어 하루 6시간 일하기) 그리고 그렇게 실천을 햇다고 해도 그 사람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막상 균형점에 서 보면, 취미 생활, 가족과 보내는 시간, 노는 시간, 휴식 시간은 더 길게 가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일은 일대로 제대로 되지 않고 수입도 줄어드는 상태가 되기 쉽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 다 놓치게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일하는 시간만큼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고, 일하지 않는 시간만큼 일의 진도는 늦추어집니다. 그러니 일을 하든 하지 않든, 피해의식이 들고 짜증이 날 겁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행복의 조건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것은 실체가 없는, 늘 도달하려고 하면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그게 뭐냐고, 그리고 당신은 그런 균형을 이루었느냐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요.

아까 위에서 일에 지친 근로자들과 일에 목말라하는 실업자들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또 하루빨리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젊은 세대와 일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년층 이야기도 해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일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헷갈려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패시브 인컴 얘기도 해 드렸습니다. 제대로 이해를 하고 덤비는 사람이든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덤비는 사람이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패시브 인컴에 열광하는 것도 어찌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일을 싫어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 특수한 사업 아이템을 찾아 헤매고 마침내는 일 안 해도 되는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일주일에 100시간씩 미친 듯이 일을 해냅니다. 마지막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신기루와 같은 개념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으신가요? 저는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핵심은 이렇습니다. ‘일’과 ‘삶’을 분리한 것이 잘못입니다. 그렇게 일과 삶을 서로 대칭적이고 대립적인 것으로 분리하고 나면 일은 일이고, 삶은 삶, 그렇게 되지요. 일은 삶이 아니고, 삶은 일이 아닙니다. 그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고, 그 둘은 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 깨어 있는 16시간 중에 8시간이 일이라면 삶은 8시간만 남는다는 식입니다. 일이 10시간으로 늘면 삶은 6시간으로 줄어들겠지요. 그러면 누군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울부짖겠지요. 이 정도 되면 일과 삶은 대칭적인 개념 정도가 아니라 서로 원수지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한, 행복은 언제나 신기루처럼 도망갈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아니면 페리스의 조언을 잘 따라 해서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행복할까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28살에 수백만 불을 번 사람의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그는 28살에 그때까지 자신이 일구어 낸 회사(무슨 기술을 개발한 것 같았습니다)를 팔고, 그 후부터 말할 수 없이 큰 삶의 공백 때문에 방황했더군요. 지금부터 남은 자기 삶 동안 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일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정말 자기 자식들이 아무 일도 안 하고 사회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고 심각하게 세상을 이해할 필요도 없는 그런 존재로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건 아마 삶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또 직업전선에서 방금 은퇴하여 일을 안 해도 되는 남자들은 행복에 겨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괜히 아내를 못살게 들들 볶는다고 하는군요. 더 이상 자아실현의 장이 없어진 남자들, 날개가 꺾이고 사회에서 소용이 없어졌다고 느끼는 남자들에게 정말 일 안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물어보십시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일과 삶을 분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일과 삶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과 삶이 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제로섬을 이루는 상호대립적인 개념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일은 최대한 줄이거나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원수 덩어리가 아닙니다. 일은 우리 삶을 경제적으로 지탱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창조적 에너지가 발휘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재능과 노력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일은 얼마든지 재미있을 있습니다. 아니,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란 것은 일로부터 최대한 멀찍히 떨어뜨려 놓아서 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신성한 공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도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중요한 의미가 일에서 나옵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협력도 일을 잘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의미도, 재미도, 상당한 정도로 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꿈도 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오락과 독서와 사회적 상호작용도 일의 일부로 재편되고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과 삶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일과 삶이 서로 원수지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둘은 서로를 알찬 내용으로 채웁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그 둘을 인위적으로 강하게 구분할 필요 자체가 별로 없어집니다.

저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행복합니다. 일이 고역이 아니라 재미있습니다. 물론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이 재미 없을 때는 왜 재미가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을 재미있게 하거나 재미있는 일만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제 일과 삶을 바꾸어 나갑니다. 저의 여가활동의 상당 부분은 제가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들, 독서, 사회 활동들, 넷플릭스에서 보는 영화들, 심지어 이 블로그조차도 제가 일을 더 잘 해나가고 재미있게 해 나가는 선순환의 일부입니다. 일은 삶의 일부가 되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삶은 일을 쉽고 즐겁게 만들어 주며 일을 그 안에 품습니다.

일과 삶을 칼로 두부자르듯 자르지 않고 일과 삶이 서로를 품는다는 이런 생각과 실천은 앞에서 살펴본 문제들을 상당한 정도로 해결해 줍니다. 저는 젊어서 죽도록 일해서 하루라도 빨리 이 ‘일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로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저는 건강을 돌볼 용의, 태도, 시간이 있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혹은 해고당하기 전에 산더미 같은 돈을 축적해 두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돈은 늘 필요하지만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노년에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기 위해 지금 건강에 무리가 갈 정도로 일하는 어리석음과는 오래 전에 작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제가 요즘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일과 삶의 경계가 애매해서요. 제가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체크하는 시간대 전체를 일하는 시간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사람 축에 들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기준으로 보면, 모르긴 해도 정말 일 적게 하는 사람 축에 들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진실은 그 둘 중간 어느 지점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쓴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일과 삶이 원수가 아니기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을 외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문장으로 이 큰 주제를 다 갈무리하기는 힘들어서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를 열거해 보겠습니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톨스토이가 한 말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그 일을 좋아한다면 당신은 삶을 멋지게 살 수 있다.” 다른 것 고려하기 전에 이것부터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 그런 말이 있더군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따라가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따라 간다고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십시오.

2.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한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보스’가 있으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기쁨을 누리기가 힘듭니다. 저는 한국에서만 그런 줄 알았더니 실은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더군요. 일을 효율적으로 하면 빨리 끝내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더 시키고, 창의적인 생각은 이해를 못하거나 자기들이 귀찮아지니까 묵살하고, 일을 잘 하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고 질시를 받게 되고,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 앞서 나갑니다. 그런 환경에서 일의 즐거움을 찾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자기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십시오.

3. 일을 잘 하기 위해 계속 배우고 노력한다

일과 삶을 서로 엮어 보십시오. 내가 즐기는 것이 일을 잘 하기 위한 기반이 되도록요. 그런 식으로 삶의 시스템을 만들어 두십시오. 일과 삶을 분리해서 일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일 아닌 모든 것은 일에 대한 방해로 여긴다면 행복해지기 힘듭니다. 일과 삶을 서로 가까이 붙여 놓고 융합시켜 보십시오. 말이 좀 거창해졌지만, 실제로 제가 하는 것은 별것도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활동들이 일에 도움이 되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일석이조가 되도록 시간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위의 요소들을 제게 적용하면, 저에게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았지만요. 여러분의 답은 당연히 다르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을 저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쉽지 않은 길이고 넘어야 할 산도 많지만,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다 결합한다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을 겁니다. 어렵더라도 조금씩 쌓아나가는 기쁨,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상황이 나아지는 구조, 일과 삶이 분리되어 그 두 가지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품어지는 그런 생활, 이 세상의 공포 마케팅에 휘둘려서 산더미 같은 부를 이루려고 발악하고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파괴적인 소비로 풀려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체가 이미 꿈의 실현인 삶, 그런 것이 좋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일과 삶은 서로 어떤 관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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